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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rtual exhibition on online, 2021

영화, 드라마와 같은 미디어 속에서 비추어진 게이, 흑인, 아시아인, 슈퍼 히어로 등 다양한 예수의 모습은 이상향에 대한 새로운 이미지적 요구이다. 예수를 제작한 이들은 자신의 유머와 정치적 이념을 그 이미지들에게 투영해왔다. 

수채화<마가 8>는 ‘백인 남성 예수’를 모독한 이러한 상들을 한데 모아 각기 다른 동시대의 이상향을 겹쳐본다. 이 중첩은 디지털 합성이 아닌 프로젝션된 이미지를 붓으로 전사하고, 그 과정에서 필수적인 최소한의 구별 간격을 견지하게된다.

 

 예배를 매개하는 성스러운 사물은 근원적 역할를 넘어 신앙적 유대감을 통해 마을 공동체를 이루거나, 외부 순례자의 유입으로 인해 경제적 이득을 만들어왔다. 사람들은 이러한 성물의 힘을 흉내내고 싶어 했고, 중세부터 지금까지 발전한 복제기술로 복제물을 점차 등장시켰다. 왜 예수가 어깨에 진 십자가 조각을 모두 모으면 배 한척도 만들 수 있다고 하지 않은가. 기술의 진보는 점차 개인화, 실용화에 이르러 3D프린트가 그 정점에 이른다. 3D프린트물은 원재료의 희소성으로 부터 완전히 독립하여 지표 없이도 원하는 사물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사물이 이전에 가졌던 사물의 성스러움을 만들어 낼 수 있는지는 의심스럽다. 피규어<마가 8>은 이러한 질문에서 시작한 작업물이다. 

 피규어<마가 8>은 영화 속 예수를 3D로 모델링하고 프린트한다. 코믹스 스튜디오 또는 망가에서 비롯된 피규어를 수집하고 자랑하는 하위 문화를 흉내낸 성물은 이전에 가진던 사물의 권위와 어떤 차이점이 있는가.

펜데믹으로 인해 교회는 방역법에 따라 비대면 예배를 진행하고 있다. 신도들은 가정에 설치된 각종 모니터 앞에서 목사의 인도에 따라 기도와 찬양을 진행한다. 흩어져 있으나 같이 있음. 디지털 방송은 먼 것의 가까움을 실행시킨다. 코로나로 인해 나오지 못하는 사람, 거동이 불편한 사람, 피로한 이동에 지친 사람은 스크린을 통해 온라인 예배당에 쉽고 안전하게 도착할 수 있어졌다. 심지어 앞사람 어깨에 가려 PPT가 잘 보이지 않거나, 유아가 배고파 우는 등 예배의 방해 요소가 싹 사라졌다. 찬양에선 장로님의 부담스런 비부라토가 들리지도 않고, 놀림당할 내가 부른 틀린 음을 들을 친구들의 귀도 없다. 내가 뱉은 음성은 거실 외벽을 타고 메아리로 내게 돌아온다. 나는 나를 의식하기 시작했고 공동체는 어색해진다.

 <마가 8>의 전시는 디지털 공간에서 이루어진다. 가상 전시 공간에 모인 익명의 사람들은 키보드 조작으로 캐릭터를 이동시켜 성스런 사물과 그림을 함께 바라볼 수 있다. 상단의 아이콘을 클릭하여 캡션 정보를 확인하거나 사물을 회전 또는 확대하는 등 쉽게 디테일을 볼 수 있다. 작품 감상은 마치 외부의 시선이 사라진 온라인 예배일 테다. 이러한 가상은 공동체를 외로운 섬들로 분화 시키는 가 아니면 노동과 책임에서 자유롭고 놀이로 가득한 네트워크가 되는가. 전시는 사물의 소멸이 가져온 오늘날의 공동체 모습 속에 적절한 대안이 무언인지의 고민에서 비롯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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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k 8:29> watercolor on paper, 788*1080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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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k 8:29> watercolor on paper, 545*788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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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k 8:29> watercolor on paper, 545*788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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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ly figure> 3Dprint, mixed material, 545*788mm,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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